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는 다음과 같다. destiny, fate, doom.
destiny는 사전에 정해진 운명이지만 개인의 행보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
fate는 숙명에 가까우며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바꿀 수 없다.
doom은 부정적이고 파멸적인 운명으로 이미 정해져 바꿀 수 없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에서 이 세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한다. 메리 셸리는 모이라처럼 빅터의 운명의 실을 계속 자아가며 그가 이런 삶을 살게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It was a strong effort of the spirit of good, but it was ineffectual. Destiny was too potent, and her immutable laws had decreed my utter and terrible destruction.
이 구절에서 destiny라는 단어를 선택하여 프랑켄슈타인의 의지가 운명에 작용할 여지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이어 오는 문장은 파멸을 선언함으로써 destiny조차도 doom적인 운명으로 만들어버렸다. 운명에서 인간의 의지가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미미하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나는 운명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운명이란 삶을 흘러가게 하는 거대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그 에너지는 무의식적인 요소들과 깊게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무의식은 개인 뿐만아니라 가족, 국가, 나아가 전 세계의 흐름이나 우주의 변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큰 에너지이다. 더욱 나아가서는 시간이란 인간에게 존재하는 환영에 불과하므로 과거 뿐만아니라 미래도 포함된 것이다. 따라서 표면의식만을 사용하는 작은 시각을 가진 인간이 운명을 예측하고 또 제동을 걸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메리셸리도 경험으로 그런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특별한 부모님 밑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교육을 받아 다른 또래들과는 어울리기 어려웠던 삶. 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프랑스 혁명으로 온 유럽이 들썩거린 직후 시대의 삶. 메리셸리가 보기에도 운명이란 거대한 힘으로인해 삶은 저절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기네스 펠트로가 주연한 '슬라이딩 도어즈'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휘재의 인생극장처럼 “그래 결심했어“를 하는 순간 영화속 기네스 펠트로의 삶은 두 방향으로 나뉜다. - 그녀가 지하철을 탄 삶과, 지하철을 놓친 삶.- 두 인생은 처음 얼핏 보기에는 큰 차이를 보이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교차하며 하나가 된다. 이 영화에서처럼 우리의 삶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것 같아도 결국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어릴 적 아버지의 사려깊은 설명이 있었더라면부터, 신비학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등등을 말하며 자신의 삶이 좀 더 장밋빛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크게 변하고, 끊임없이 깨어있는 선택을 하여 운명을 운전할 수 있는 변형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결국 그대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변화는 아마 외부에서보다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빅터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주어졌을 것이다.
삶은 더 윤택하고 즐겁고 좋은 것만을 바라보기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영혼이 바라는 것은 그 어떤 삶도 받아들일 용기와 삶의 파도에 넘어진 자신을 끊임없이 용서하고 일으키는 넓은 사랑이 아닐까.
운명이라는 거대한 지성 또한 인간에게 사랑과 포용의 태도를 배우고 더 큰 의식을 가진 존재가되어 doom조차도 destiny로 여길 수 있고 종국엔 운명 자신을 넘어선 존재가 되게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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