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enstein의 이야기는 과학윤리에 주로 초점이 맞춰지곤 하지만 그 해석은 내게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Frankenstein과 creature(이름도 없는 이 피조물을 뭐라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부르겠다)의 첫 대화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는 나와 나 자신의 대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하게는 나와 내면자아, 혹은 나와 나의 생각들, 감정들, 느낌들의 대화.... 저자인 메리 셸리가 저서에서 자연철학을 언급한 것을 보아 어느 정도 신비학적 지식이 있었던 것 같아보인다. 그녀도 이러한 인간의 내면의 존재들에 대한 사색을 해보지 않았을까?
나는 지난 여러 해동안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들여왔다. 사실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시작했던 것은 아닌데 이것저것 공부하다보니 결국은 나에 대한 탐구가 없이는 중심이 없는 겉껍데기일 뿐임을 깨달았다.
나에 대한 탐구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생각,감정,느낌을 내면자아를 다루는 것을 꼭 지나가야한다. 각각을 다루어내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고비중의 고비인 생각을 다루는 것을 가지고 이 글을 써보려한다.
나의 생각의 핵은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 핵을 중심으로 계속 생각은 뭉쳐지고 뭉쳐지며 커진다. 멋지고 옳고 좋다고 생각한 것들을 계속 붙여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의식의 희망사항이고, 우리는 종종 무의식상태로 옳지않고, 싫다고 생각한 것들도 붙이고 있다. 생각덩어리를 주의깊게 관찰하여 잘 만들면 좋겠지만 우리는 생각의 힘이 물질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믿지 않기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붙이는 문제는 계속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어느 순간 나의 생각이 고결해보이지만은 않는 때가 오게된다. 마치 Frankenstein이 Creature를 만들때 아름다운 것을 이어붙였다고 했지만 추한 모습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한번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진 않지만 어떤 생각들을 충분히 반복하고 인간의 감정과 느낌의 에너지를 넣어주면 전기충격을 받은듯 소생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생각은 자신만의 힘을 가지고 굴러가기 시작한다. 나는 생각을 조절하고 싶고 멈추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내 생각의 창조자이자 주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생각은 내던져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생각덩어리들은 스스로 일정한 힘을 얻으면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하다가 결국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주인에게 돌아온다.
신비주의에서는 이것을 엘리멘탈, 라르바, 염체 등등으로 구분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을 제거하거나 잠재우는 방법도 혹은 의도적으로 일정한 생각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다양하게 존재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수행법이 존재하였다.. 물론 이 생각덩어리를 극복하는 것이 깨달음의 목적은 아니고 이 과정을 통해서 의식의 변성과 상승을 경험하는 듯하다.
나의 경우 내 생각덩어리들중 부정적인 녀석들이 활개를 치고다니기 시작하면 외면하거나 억누른다. Frankenstein이 creature를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똑같이 행동한다. 그리고 이 에너지들이 세상을 다니다가 나에게 고통을 가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저주를 퍼붓는다. Frankenstein이 creature와 처음 대화할 때 내뱉는 말 그대로 Demon이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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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enstein과 creature는 인간 의식 속의 고요한 마음속에서 만난듯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청정한 자연속에서 조우한다. Frankenstein이 자연의 품에서 기쁨을 느낀 순간 creature가 나타나 분노를 뿜어낸 것은 고요한 인간의 마음에 감출 수 없이 모든 감정과 생각등이 드러나는 것 같이 보인다.
Frankenstein과 creature의 첫 대화는 그런 나와 나의 생각덩어리의 대화같다. Creature가 입만 열면 닥쳐라고 말하는 Frankenstein처럼 나는 내게 돌아온 망나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한 술 더떠서 내가 그 생각덩어리를 만들었다는 기억조차도 없다.
나는 최근에 이 부정적인 생각덩어리의 말을 들어보려 하지만 나의 생각덩어리는 그동안 나와 단절기간이 길어서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Frankenstein에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creature는 1년 반만에 30년을 넘게 공부한 나의 영어실력을 뛰어넘는 유창함으로 자신의 창조자를 상대한다. (아마도 여러사람의 시체를 이어붙였으니 그들의 장기속에 있는 내장의 기억들 덕분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안해보지만 혼자 깨우쳤다기엔 너무 말을 잘한다. )
어쨌든 이 creature가 하는 말들은 족족 옳다. 아무와도 이야기해보지 못했고 교육도 받지 않은 그가 선악을 제대로 알리 만무하다. 그는 자연에 가까운 존재니까.그는 자신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 Frankenstein보다 더 진실된 말을 쏟아낸다.
Frankenstein, be not equitable to every other and trample upon me alone, to whom thy justice, and even thy clemency and affection, is most due.
Remember that I am thy creature;
I ought to be thy Adam, but I am rather the fallen angel,
whom thou drivest from joy for no misdeed.
Everywhere I see bliss, from which I alone am irrevocably excluded.
I was benevolent and good; misery made me a fiend.
Make me happy, and I shall again be virtuous.
Creature가 쏟아낸 말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이다. 특히 Make me happy.
Creature가 하는 말들은 꼭 나의 생각덩어리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처럼 들린다. 내가 자신을 미워했기에 악마가 되었다고, 자신은 원래 빛나는 존재인데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부정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악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나에게 미움을 받아 빛을 잃고 악마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과나눈이야기의 저자 닐 도날드 월시가 쓴 동화책 "작은 영혼과 해"를 보면 '빛'이 자신이 빛인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위해 어둠이 되길 자청하는 또다른 빛이 나온다. 이 존재가 demon일 수 있겠다. 악마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조금 줄어든 존재일 뿐이고 천사는 빛이 더 늘어난 존재일 뿐이다. 슬픔과 기쁨이 하나이듯. 그 둘은 다르지 않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덩어리들을 끊임없이 선악으로 판단할때 그것은 광폭해질 것이다. 우리의 생각덩어리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창조자의 사랑이었을 테니까. 사랑을 주고 빛이 늘어나면 creature도 박씨전의 박씨처럼 허물을 벗고 아름다워질지는 모르겠다.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내면은 빛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못난 생각들과 못난둥이들을 사랑해줘야지 하고 또 마음을 먹어본다. 마음을 백번 먹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듯하다. 한번 행동으로 옮겨서 되는 것이 아니고 수없는 반복으로 무의식까지 꽉꽉 채워야할 일이니까.. 오늘도 나는 그렇게 나와 화해할 방법을 또 찾아보고 실험해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신도 감동해서 생명을 넣어줄 갈라테아를 만들어보려한다.
<이 모든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그동안 주워들은 것을 짜집기해본 것이다. Frankenstein의 Creature처럼..^^>
#나를위한글쓰기 #영어원서모임브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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